1. 서론: 석유 없이는 1초도 안 굴러가는 현대 사회
만약 지금 지구상에서 '석유'가 마법처럼 통째로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자동차와 비행기가 멈추는 것은 약과다. 우리가 입는 옷(폴리에스테르), 스마트폰 케이스와 비닐봉지(플라스틱), 심지어 아파서 먹는 알약(의약품 성분)과 농사를 지을 때 쓰는 화학비료까지 전부 석유를 정제해서 만들기 때문에 인류 문명은 그야말로 석기시대로 리부트 될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의 거대한 핏줄이자 전 세계의 국경선과 전쟁을 좌우하는 이 '검은 황금'은 어떻게 인류의 심장을 장악하게 되었을까? 석유가 바꾼 파란만장한 현대 세계사의 비하인드를 탈탈 털어보자.
2. 고래들의 구세주: 등유의 발견과 인류 최초의 슈퍼 리치 '록펠러'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인류는 밤을 밝히기 위해 주로 '고래 기름(경유)'을 썼다. 이 때문에 수많은 고래가 남획되어 멸종 위기에 처해 있었고, 밤을 밝히는 비용은 너무나 비쌌다. 그런데 1859년, 미국의 에드윈 드레이크라는 인물이 땅속에 파이프를 박아 엄청난 양의 액체 상태 석유를 뿜어 올리는 데 성공한다. 현대 석유 산업의 시초였다.
이 찐득하고 냄새나는 액체에서 '등유(불을 밝히는 기름)'를 뽑아내 전 세계의 밤을 밝힌 인물이 바로 인류 역사상 가장 돈이 많았던 부자, '존 D. 록펠러'다. 그는 '스탠더드 오일'이라는 회사를 차려 미국의 석유 유통망을 90% 이상 독점했고, 고래 기름보다 훨씬 싸고 안전한 기름을 공급해 고래들을 본의 아니게(?) 구원해 냈다. 이때까지만 해도 석유는 그저 '밤에 불을 켜는 용도'에 불과했다.
3. 자동차의 폭주와 석유의 시대: 버려지던 쓰레기의 화려한 반전
전구(전기)가 발명되면서 록펠러의 등유 제국은 망하는 듯싶었다. 하지만 석유에게는 인류의 운명을 바꿀 거대한 반전 카드가 남아 있었다. 바로 18화(고무 타이어)의 대유행과 맞물려 터진 '내연기관 자동차'의 등장이었다.
그전까지 석유를 정제할 때 등유를 빼고 남은 찌꺼기라며 강물에 그냥 버리던 쓰레기 액체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휘발유(가솔린)'였다. 그런데 이 휘발유가 자동차 엔진을 돌리는 최고의 연료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석유의 가치는 우주 끝까지 폭발하게 된다. 여기에 5화에서 다룬 제1차·2차 세계 대전이 터지자, 굼뜬 석탄 군함 대신 속도가 두 배나 빠른 석유 군함과 탱크, 전투기가 전쟁터를 지배하면서 석유는 국가의 생존을 가르는 최고의 전략 자산으로 등극했다.

4. 모래바람 속의 권력: OPEC의 탄생과 전 세계를 얼려버린 오일 쇼크
2차 대전이 끝난 후, 석유의 주도권은 미국에서 저 멀리 중동의 사막지대로 이동했다. 전 세계 석유의 절반 이상이 중동 땅속에 묻혀 있다는 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서구 열강의 거대 석유 기업(석유 메이저)들에게 가차 없이 착취당하던 중동 국가들은 1960년,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OPEC(석유수출국기구)을 결성하며 똘똘 뭉쳤다.
그리고 1973년, 중동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터지자 중동 국가들은 석유를 '무기'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을 돕는 서방 국가들에게 석유를 안 팔겠다며 공급을 끊고 가격을 순식간에 4배나 올린 것이다. 이것이 전 세계 경제를 대공황 직전까지 몰고 간 '제1차 오일 쇼크(석유 파동)'다. 주유소마다 기름을 넣으려는 차들이 수킬로미터씩 줄을 섰고, 공장들이 문을 닫았다. 전 세계가 중동의 사막에서 나오는 검은 액체 한 방울에 얼마나 나약하게 휘둘리는지 뼈저리게 깨달은 순간이었다.
5. 결론: 검은 황금의 시대에서 새로운 미래로
록펠러의 등유 램프에서 시작해 자동차와 세계 대전을 거쳐 중동의 오일 쇼크까지. 석유의 역사는 현대 자본주의가 어떻게 풍요를 누려왔고, 동시에 그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음모와 전쟁을 벌여왔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리포트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플라스틱 제품 하나, 타고 다니는 버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다 석유가 짜놓은 거대한 문명의 그물망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석유의 시대도 서서히 황혼기를 맞이하고 있다. 석유가 뿜어낸 탄소 때문에 지구 온난화라는 거대한 청구서가 날아왔고, 인류는 이제 전기차와 신재생 에너지라는 새로운 생존 방식을 찾아 나서는 중이다. 지난 150년간 지구를 지배했던 검은 피의 역사를 돌아보며, 인류가 다음 세대에는 어떤 자원을 주연 배우로 삼아 역사를 굴려 나갈지 기대해 보는 것은 어떨까.